제 8 장, 간접적 의사소통
의사소통을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의식적인 자아만이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의사소통을 결정하 지 않았더라도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욕구가 있었다면간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됩니다.
때때로 의사소통을 바라지 않는데 불가피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듯이, 가끔은 간접적이거나 타의적으로 의사소통이 행해지기도 합니다.
의식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경우 신체는 신호를 보내기도 합니다. 심인성 신체증상이 그것인데, 스트레스에 의한 고혈압이나 심장질환, 두통이나 어지러움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언어, 바디랭귀지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또다른 형태로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심리기제에서 일어나는 ‘실언’이 있습니다. 흔히 하는 말실수이기도하지만 본인이 빨리 알아채지 못한다면 때로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의사소통을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의식적인 자아만이 아닙니다. 의식적으로 의사소통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욕구가 있었다면간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고, 위에 언급한 여러 신체반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간접적 의사소통의 상황적 예를 들자면, 개인적인 비밀이 있을 경우 의식적으로는 비밀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무의식은 그 비밀이 들킴으로써 비밀유지의 긴장감과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딸의 방을 청소하다가 봉투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 알 수 없는 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것을 남편에게 보이고 즉시 약사를 찾아가 위험한 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는 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었고 딸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고 노발대발 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봉투를 뜯어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에겐 비밀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숨은 욕망이 있어서 주위에 증거를 남겨둔 것입니다. 딸은 자신의 문제에 도움을 원했으나 스스로 도움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가설적 예로, 남편이 부인의 가방을 간혹 뒤진다는 것을 알면서 부인은 자신의 비밀을 적어둔 노트를 가방안에 넣어 놓습니다. 그 노트안에는 남편 모르게 다른 남자와 교제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미처 다른 곳에 놔두기 전에 남편이 봤다고 할 수도 있고, 비밀을 들켜버려 부인은 당황하기도하고 남편에게 프라이버시를 침범했다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합니다. 이제 어떤식으로든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부인은 더이상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부들을 실제로 들여다보면 1차적 관계인 부부 간에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하는 외침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연애가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의사소통을 하고자하는 욕구가 더 강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증거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자아의 목적보다 강하며, 삶의 목적에 비밀은 좀처럼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 간접적 의사소통을 하기도합니다. 남편과 부인이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화가 좀 가라앉은 뒤 남편이 부인에게 사과를 하고는 싶으나 직접 말하기 어려울 때, 피곤해하는 부인을 위해 장을 보거나 말없이 청소를 해 줍니다. 그러면 부인은 남편이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지만 사과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사랑은 마음 속으로부터 일어나고 영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언어는 특히 간접적이기 쉽습니다.
한 청년이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만났다면 다자고짜 사귀자고 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거절 당할까 두렵기 때문에 되도록 우회적으로 관계를 만들고 질문을 하고 호의를 표현합니다.
어떤 남편은 휴일에는 텔레비전으로 운동경기를 보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인은 쉬는 날은 같이 나들이도하고 외식도 하고 싶어합니다. 어느날 이 문제로 두 부부가 싸웠습니다. 남편은 화해의 행동으로 외식을 하자고 했지만 상처받은 부인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생각하니 남편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운동경기가 끝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타 줍니다. 이 메시지는 “화해합시다”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표현은 간접적으로 표현되기도하는데, 어떤 꽃은 약간 그늘진 곳에서 더 자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간접적 의사소통이 비겁하게 느껴지기도하고 숲 속의 새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거절당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합니다.
의사소통의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 버린 경우 “행동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좋지 못합니다. 행동화는 자칫 관찰자가 행동화 뒤의 이야기나 느낌, 욕구, 생각을 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남편은 늘 사업으로 바쁩니다. 부인은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원하기때문에 시간이 있을 때마다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지만 묵살되곤 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외간 남자와 연애를 하기로 결심하고 연애를 하는 중 남편이 알도록 이런저런 행동을 합니다. 이를 알게 된 남편은 화를 내며 부인을 힐책합니다. 부인은 드디어 남편이 자신에게 관심을 준다고 느껴 살맛이 났지만, 두 부부는 불행히도 화가 난 채 마주대하는 중입니다. 화는 오히려 의사소통에 방해가 될 뿐만아니라 관계를 회복시기키 어려운 국면으로 가게 합니다. 이처럼 의사소통을 의한 “행동화”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약물복용, 반사회적 행동 등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간접적인 시도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때때로 이런 행동화의 범주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자살 모두가 의식적인 계획은 아니지만 나를 봐주길,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음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자살시도가 행동화로 나타날 때 의식과 무의식적 마음 사이에 있는 그림자 영역에서 계획되어진 것이기에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왜 했는지 좀처럼 알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행동화”를 통한 의사소통은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떤 수준에서 “행동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려고 합니다. “행동화”의 저변에는 우리들의 커다란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란 상대방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인지한다면 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참고서적, [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 하나의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