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사례_1. 정서와 정서적 유대감

상담 사례_1. 정서와 정서적 유대감

중요한 것은 어떠한 어려움도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지가 있다면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서를 만나지 못해 외롭고 불행하다면,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움직여 보시기 바란다.

 

#1. 청소년 사례 : “유색군이 된 무색군”

고개를 떨군채 말이 없는 17세의 무색군. 무색군은 가족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집에서도 자기 방에서 꼼짝을 안 한다. 물론 마음을 나누는 친구도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성적을 얻지 못해 우울해 했다. 무색군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상담을 받으러 왔다. 엄마는 아이가 표현도 없고, 친구도 없고, 침울한 기분상태로 보이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상담을 받아야 할 당사자인 무색군은 자신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무색군은 상담 장면에서 고개를 떨군 채, 할 말이 없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고, 묻고 또 묻고…… 그렇게 상담자가 말할 때와 침묵의 시간으로 더 많은 상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색이는 사람들하고 어울리기가 정말 싫은 것이 아닌 것 같아. 사람들하고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싫은 것으로 결론 내린 것 같아.” 라는 상담사의 말에 무색군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무색군의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타인의 마음을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무색이는 내향형의 성격으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불편감을 느꼈다. 그런 이유로 표현을 하지 않다보니, 가족들과도 점점 정서적 거리가 생기게 되고 친구도 사귀지 못 하게 되었다. 외롭고 침체되어 있는 정서에 머무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학교 성적이 좋으면 주목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에 맞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부문에서 무색군의 진짜 욕구가 드러나 있었다. 어쩌면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무색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무색군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 더 이상 집에서 자기 방에만 들어가 있지 않게 되었다. 가족 외식에도 동참해서 먹지 않겠다던 음식도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엄마한테 직접 불러 드리기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 집에도 놀러가고 밤늦게 통화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상담 종결 회기에서 무색군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내 주변 세상이 회색이었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색깔들이 입혀진 것 같아요.” 그렇게 무색군은 유색군이 되었다.

#2. 부부사례: “플랜의 홍수에서 필링의 홍수로 빠지게 된 플랜”

플랜은 오늘도 자신이 한 일과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느라 항상 머릿속이 바빴다. 우선 자신이 했던 일이 계획했던 대로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떠올려 점검한다. 그 다음으로는 앞으로 할 일들의 세부 계획들을 잊지 않기 위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로 플랜의 머릿속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도 쉴 틈이 없다. 플랜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직장에서도 주어진 일을 완벽히 해내느라 바빠서 동료들과 사적인 얘기를 나눌 틈이 없다. 그리고 자신만이 실수가 없다는 것에 매우 큰 성취감과 존재감을 느낀다. 플랜의 부인 나우는 자기욕구와 내면의 정서에 매우 충실한 사람으로 이런 남편을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설명과 판단, 평가이다. 예를 들어, 나우가 “이 청소기 너무 예쁘다. 이거 사고 싶어.” 라고 말하면 플랜은 그 청소기의 가성비와 장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플랜에게 물건을 구매할 때 고려할 것은 오로지 ‘가격대비 성능과 품질이 얼마나 좋은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청소기가 그냥 예뻐서, 끌려서 갖고 싶다는 나우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런 플랜의 태도에 서운한 나우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심지어 심한 욕설을 퍼붓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상담 장면서 나우는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 준 적이 없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됐어요.” 라고 호소했다. 그 반응에 “당신이 소리 지르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라며 반박하는 플랜.
부부상담 중반 회기 즈음에 부부는 서로의 마음 세계에 들어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상담자의 설명에 나우는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바람을 알아주는 상담자의 반응에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럴 때 보통 남편은 통찰이 된다는 표정과 반응을 하는데, 플랜은 갑자기 오른 손을 들고 “저 잠시만요. 할 말있어요.” “제가 왜 이 사람의 마음 세계에 관심을 갖고 알아야 하나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그 말에 부인 나우는 울음을 뚝 그치고, 상담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하지만 플랜은 나우를 사랑한다고 했다. 자유로운 영혼인 나우를 보면서 좋아보였고, 나우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울타리가 되어 주기 위해 결혼했다고 했다. 이러한 결혼 동기는 플랜의 내면에도 자신의 정서를 자유롭게 풀어놓아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기가 스스로 행복해질 때, 자기다워 질 때 배우자도 자유롭고 행복해진다는 설명과 함께 상담자는 플랜이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인식하게 도왔다. 그때 이후로 플랜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맞이한 청소년 같기도 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런저런 감정들을 마주하느라 좌충우돌하기도 하였다. “직장에서 내가 힘들어서 일을 더 못 하겠다고 하기도하고 실수도 했는데, 사람들이 다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하면서 아이 같은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렇게 플랜의 홍수에 빠져있던 플랜은 감정의 홍수에 빠지게 된 것이다. 플랜의 변화로 나우가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부부관계 역시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정서는 무색군의 표현처럼 우리 삶에 다양한 색을 입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며, 지금 여기를 생생하게 살아가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감은 필수요소이다. 원시시대부터 맹수의 공격에 맞서 싸워 생존하기 위해서는 집단을 이뤄 힘을 합쳐야 했던 것처럼, 인간은 오래 전부터 생존을 위해 타인과 결합되어 왔다.

그럼 이토록 중요한 정서적 유대감은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그것을 위한 첫번째 스텝은 위의 사례들처럼 먼저 자신의 진솔한 정서를 알아차리고 드러내는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은 타인과 정서를 공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고, 공감반응을 받고 또 주기도 하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럼 정서표현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원인적 요인이 있을까?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다. 기질적으로 내향형에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경우, 어린 시절 불행감이 자주 느껴지는 환경에서 자란 경우, 주 양육자로부터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 타인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되는 사건을 반복적으로 겪게 된 경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어려움도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지가 있다면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서를 만나지 못해 외롭고 불행하다면,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움직여 보시기 바란다. 생동감이 있는 다채로운 색체로 채워진 그림같이 지금여기를 살아가 될 수 있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안정감과 따뜻함으로 힘을 내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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