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위안] *김혜령

불안은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그 불안을 잘 다룬다면, 시원한 그늘에서 직사광선을 피하면서 빛을 즐기 수 있듯이 우리를 좀 더 안정되게 이끌어 줄 수도 있다.
작가 또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안은 위안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짙은 불안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를 확장시키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가끔 두통이 있다. 신경을 과하게 써서 그럴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며 기분이 묘하게 안 좋은 두통이 있다. 두통으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불안한 감정은 흔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아무래도 그 불안을 떨치려고 나름의 방법으로 애를 쓰게 된다.

불안은 고통을 앞서 맞는 것이다. 대부분의 불안은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추측이나 불안해 해봐야 소용없는 일들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안을 달고 산다.
불안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위치나 자리에 따라 불안감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한다. 가족에게건 연인에게건 사회적이건, 나에게 주목해주고 이름을 기억해주며 의견에 귀 기울여주고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를 들어줄 때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다른 말로는 사랑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우리는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위치가 높으면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기가 쉽다. 엄밀히 따져 이 모든 것이 외부적 요인임에도 영향을 많이 받게 되어 나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결정하게 된다. 사랑이 불안을 느끼게도 하는 스위치인 셈이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드 보통은 [불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고,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대한 소식은 불안을 유발시킨다고 현대사회의 불안을 분석했다.

매슬로우는 총 5단계의 욕구위계이론에서 생리적욕구가 충족되면 안전의 욕구로, 그것이 충족되면 애정, 소속의 욕구로, 그다음은 자존의 욕구, 마지막으로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간다고 설명한다. 각각 별개의 욕구이지만 모든 단계가 위계적으로 연결되어 아랫단계가 채워지지 않으면 윗단계로 갈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각 욕구마다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안정의 욕구이다. 어느 단계든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감을 느낀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움으로써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속에 있다. 결국 불안감은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감정이자 길이고 도구인 셈이다.

파스칼은 불안을 고찰한 철학자이다. 그는 종교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안정기로 접어든 시기에 인간의 불안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인간에게 전 우주를 사유할 수 있는 위대함이 있지만, 유한한 존재이기에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이 미약한 인간의 운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은 대자연 안에서 한 개의 갈대와 같이 가냘픈 존재’이기에 불안을 거두고 종교를 믿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종교의 가장 큰 역할은 신의 사랑이다. 또한 사람도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면 두려움과 어려움들을 잘 견디어낼 수 있다. 사랑의 힘을 안다면 불안을 거두고 사랑을 믿어야 함과 같다. 사랑이 또다른 불안을 일으킨다는 악순환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인생 전반에 걸쳐 불안은 늘 따라다닌다. 자아의 불안, 사회에서의 불안, 일터에서의 불안, 사랑하는 사람과의 불안, 가족의 불안. 그 불안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잘 견디어내야 한다. 그러려면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먼저는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지금’ 기분이나 감정이 어떤지 읽어주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내 안의 생각과 감정도 읽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행위다. 그런 다음 내가 가까운 사람의 편이 되어주듯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혼내는 습관, 죄책감과 무가치함을 포함하는 내 자신에 대한 가혹한 평가 등은 불안감을 더 강하게 한다. 그러니 버리지는 못하더라도 나에게 관대할 필요는 있다. 습관적으로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한심하게 여기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친절과 사랑을 베풀기는 어렵다. 그것이 자기통제의 방법이라 여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함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방법도 있지만 반대로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며 성장해나갈 수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에게 너그러운 태도가 건강개선과 체중조절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과 육체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대상과의 사랑은 안정을 주면서 동시에 불안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랑은 그야말로 양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생각에, 그나마 안정적인 사랑은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적 사랑이 아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끼고 사랑하고 격려한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고 주변의 대상들과도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게 마련이고, 빛이 짙으면 그늘도 짙다. 그늘이 없는 날은 빛도 없는 날이다.
불안은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그 불안을 잘 다룬다면, 시원한 그늘에서 직사광선을 피하면서 빛을 즐기 수 있듯이 우리를 좀 더 안정되게 이끌어 줄 수도 있다.
작가 또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안은 위안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짙은 불안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를 확장시키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기쁨이 기쁨에 그치지 않고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안도 그렇다. 마침내 불안은 위안을 길어 올릴 것이라 믿는다.’라고.
나를 포함하여 나와 이어지는 인연 속에 있는 분들이 불안을 통해 조금 더 성장해 가시기를 기도한다.

 

참고문헌, [불안이라는 위안] 김혜령, 웨일북/ [불안] 알랭드 보통,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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