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7 *김중원 옮김

제 7 장, 죄책감과 의사소통

죄책감에는 진정한 죄책감과 가식의 죄책감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에게 해당되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후자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으므로 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자는 가식의 죄책감으로, 이는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비난하는 소리입니다.

 

첫 장에서 밝힌 바 있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좋은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화제 바꾸기”를 하여 피하거나, “숲 속의 새”처럼 하여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동시에 불안감과 죄책감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하며 자아상을 낮게 하므로 의사소통 가운데 그러한 화제가 나오면 뒤로 물러서던지 반격하고 비난하여 일격을 가합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반응을 보이면 게임은 끝나고 실제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죄책감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죄책감이 우리에게 해당될 때 받아들이고 해당되지 않을 때 거절하는 것을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책감에는 진정한 죄책감과 가식의 죄책감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에게 해당되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만 후자는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으므로 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자는 가식의 죄책감으로, 이는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비난하는 소리입니다. 아치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관찰하면서 조금의 기회만 주어지면 부정적인 언급을 하여 간섭하는 내부의 심판과 비슷합니다. 보통, 남자에게선 비난의 목소리가 여자의 목소리로, 여자에겐 남자의 목소리인 것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판단하는 소리를 들어 왔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판단의 생각들이 우리들의 자아와는 다른 부분에서 나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만성적인 우울을 갖게도 하고 자아상을 매우 낮게하며 자발성을 억눌러 생활반경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흔히 최책감을 일으키는 사고는 과거로 올라가면 그 근원이 부모로부터 나옵니다. 값 비싸고 좋은 신발을 신고 진흙탕을 걸어다니는 것과 같은 잘못을 주로 어린시절에 하는데 이와 비슷한 잘못들에 부모들의 반응은 대부분 화를 냅니다. (만약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고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 준다면 어떨까요?)
또한 아이의 잘못에 대한 흔한 표현, 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등의 말은 어린아이의 무의식에 자신이 매우 나쁜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합니다. 이렇듯 우리들 내부의 비난의 소리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 부모들의 영향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성장했다면 그 문제로 부모를 비난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속한 것이며 우리가 처리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던 간에 원형과도 같은 내부의 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난의 소리에 대항하여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각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 의식 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주의를 집중하여 비난의 소리가 나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 우리 자신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내부의 비난의 소리에 관심을 기울여 없앨 수 있는 죄책감을 노트에 적어두어 부정적이고 불쾌한 감정인지 우리 자신의 생각인지 구별하거나 친구나 성직자, 상담가 등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 비난의 소리와 적극적으로 대화해 봅니다. 이때, ‘상상으로 조작하려 하는군’하는 비난의 소리가 들린다면 무시하십시요.
비난의 소리는 내부의 비판자의 소리일 뿐이며, 진실한 자의 소리는 진정한 양심을 말합니다. 때로는 내부의 비판자가 마치 신처럼 우리의 양심인 양 가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판자는 파괴적일 뿐으로, “당연히, 꼭”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대부분 비난하는 말들입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실패자인가 보다”와 같은 느낌을 준다면 비판자의 목소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내부에는 진정한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은 실제 자아로부터 나오는 소리이며 삶이 옆길을 갈 때 교정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이 양심의 소리가 들릴 때는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의한 교정을 위해 우리 자신을 제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교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의 실제 자아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이런 교정의 목소리는 가식된 죄의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실하고 깊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인간성에서 멀어져 듣게 되는 신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이 진정한 양심이며 이 때 깨닫는 죄의식이 진정한 죄의식입니다.
가식된 죄의식은 우리의 인격을 손상시키지만 진정한 죄의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속한 죄의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면 인격이 성장하고 확대되며 결코 훼손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삶의 태만과 실패에 도전할 수 있다면 진정한 죄의식은 우리를 치유하고 성장시킵니다.

어떤 남자가 거만한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정중히 대했는데 아내는 오히려 점점 더 거칠어졌습니다. 마찰이 생기면 더 화를 내거나 며칠씩 말을 하지 않아 가족들을 더 불안하게 하고 결국은 굴복시켰습니다. 남편은 더욱 친절히 아내를 대했고, 아이들도 아버지는 좋은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부인은 점점 더 악해졌습니다. 남편의 속마음은 예전에는 자신이 동물원 안에 있다면 지금은 작은 새집에 갇힌 것 같이 불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도 억제할 수 없는 사이 부인에게 악담과 함께 따귀를 때렸습니다. 곧이어 자책하며 후회했고 내부에서 비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남편의 죄의식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분명 다른 사람을 구타했다는 데서 옵니다. 성직자도 아내를 때리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 했고, 내부의 비판자도 지적을 합니다. 남편은 어릴하며 적 비슷한 사건을 기억합니다. 자신을 꾸중하는 어머니께 삐딱하게 대들었다가 이틀동안 방에 갇히고 가족 누구와도 말하지 못하는 벌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그는 스스로 나쁜 사람이고 다시는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순교자인냥 화를 낼 상황에서도 화를 참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던 중, 자신이 오히려 자신을 감추고 살아왔던 점, 솔직하지 못했던 점들을 떠 올리며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아주 ‘정중함’으로 대했던 것이 더 큰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것은 가식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에 은밀히 협조하는데서 옵니다. 가식의 죄의식을 버리려면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감이 넘치도록 심리적으로 정직해야합니다. 우리의 문제로서 불행이 왔다면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내부 비판자는 자기 중심적인 자아에게서 그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내부 비판자와 가식의 죄의식에서 해방될 용기를 낸다면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자발적인 생활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생은 어떤 개런티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으로서 과감하게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참고서적  [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 , 하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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