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윤설
꿈속에서 내가 아기를 잃어버렸다. (실제로 우리 작은 아이가 네 살 때, 잠자는 것을 보고 큰아이를 학교 가는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은 열려 있고 아이는 없어서 정신이 반쯤 나가 동네를 뛰어다닌 경험이 있다.) 꿈속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지금 두 아들은 아니지만 내 아이인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꿈을 꾸었다. 간혹 꿈을 꾸기는 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잊어버린다. 어쩔 때는 꿈속에서도 중요한 꿈인 것 같아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하고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날 꿈도 그랬다.
꿈속에서 내가 아기를 잃어버렸다. (실제로 우리 작은 아이가 네 살 때, 잠자는 것을 보고 큰아이를 학교 가는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은 열려 있고 아이는 없어서 정신이 반쯤 나가 동네를 뛰어다닌 경험이 있다.) 꿈속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지금 두 아들은 아니지만 내 아이인 것 같았다. 꿈속에서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를 찾고는 있었지만 당황스러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또 너무 의아했던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내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며 막 찾으러 다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보통은 누가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함께 찾아주고 안타까워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사람들의 반응이 ‘에구 어쩌누…’ 하고는 끝.
이 책을 쓰신 선생님도 꿈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종이 상자에 넣고 옷가지를 덮은 뒤 상자를 닫아버리고 잊어버렸다가 퍼뜩 생각이 나서 다시 찾으러 갔다는 꿈이다. 아무리 꿈이지만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또 꿈이라 뭐든 괜찮다.
내 꿈 속 아이와 저자 선생님 꿈속의 아기가 상징하는 것은 찾아서 해결해야 하지만 무의식 속 깊숙이 있어서 잊어버린 ‘어린시절의 나’이다.
그 ‘어린시절의 나’는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그래서 열어볼지, 그냥 닫아놓을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는 것은 용기도 필요하고, 어떤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 선생님은 노련한 분석가 선생님과 함께 열어 보았고, 자유로워 졌으며 자신에게 잠재해 있던 능력도 함께 발견되어 저술 활동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형경 작가도 정신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보면 대부분은 낮에 있었던 어떤 경험에서 미처 해소되지 못한, 무언가 억압시켜야했던 욕망이나 정서가 무의식을 자극해서 꿈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꿈속의 자아가 현실에서 허용되지 않는 대상과 에로틱한 사랑을 나눈다거나, 평소에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꿈속에서 낯선 사람과 피 터지게 싸우기도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는 꿈에 주목하고 꿈을 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억압된 감정이 무엇인지 인지함으로 해소한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의 차이는 방어를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도 되느냐와 같은 마음의 여유와 관련이 있다.
저자의 다른 꿈은 성인 시체 세 구를 식당용 김치냉장고에 넣는 것이었다. 엄청 무거운 시체 두 구는 넣었는데 한 구는 넣을 자리가 부족해서 냉장고 안을 정리 하려고 하자 엄마가 그냥 버리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이 꿈을 분석해 보니 ‘성인 시체 세 구’, ‘무게감’, ‘엄마’에서 자신의 세 자녀와 요양원에 계신 엄마, 그리고 당시 그들을 돌보는 것에 대한 과도한 심리적 압박이었다고 한다. 꿈속 자아는 이 잔인한 꿈을 조작함으로써 자아를 보호하려고 했고, 꿈 분석 작업을 오래 한 저자는 너무 늦지 않게 자신의 무의식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고, 세 자녀의 경제적 뒷바라지와 정서적 품어줌도 해야 하고, 요양원에 계신 엄마도 늘 마음에 걸리고… 이러저러한 사정을 아는 임상감독 분석가도 좀 쉬라고 했지만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으니 계속 자신을 힘든 상태로 두었고 이런 꿈까지 꾸게 된 것이다. 그 꿈은 삶의 무게가 버티기 힘들 정도에 다다랐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저자는 그해 10월에 체코 프라하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고 한다.
때때로 무의식은 의식보다도 더 강력하게 내 삶에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를 알아차리고 나를 돌보고 나를 사랑하게 된다.
우리로 하여금 살아갈 힘을 잃게 하는 것도 사랑이고, 살아갈 힘을 갖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다른 이들로부터 받는 사랑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할 수만 있어도 살아낼 수 있다. 또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아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서로 그럴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마음이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은 꿈, 무의식, 정신분석에 관한 내용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다룬 재미있는 책들이 많지만 이 책도 참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나와 비슷한 상황들, 나와 비슷한 생각과 느낌들이 많이 있어 공감도 되고 위로도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