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십대 사이]5 *하일 G. 기너트/ 신흥민 옮김

5 . 비판:새로운 접근

관계 사이에는 늘 완충될 수 있는 공간을 두어야 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객관과 주관 중간 정도에서 상황을 보고 대처할 수 있다.

비판적 시각은 개선하고 자정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준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반면 비난은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즉흥적이고 흥분적이어서 마음을 상하게 한다. 비판과 비난은 한 글자 차이로, 조심하지 않으면 비판이 비난이 될 수 있다.

운전을 하다가 길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좋은 마음과 좋은 말로 운전자의 운전습관, 길을 찾는 방법 등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서 비판해 준다면 어떨까?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비판적 판단이라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부모들이 십대 자녀에게 하는 비판이 이런 효과를 낼 때가 많다. 물론 부모 마음이야 자식 잘되라고, 집에서는 실수해도 나가서는 잘 하라는 의미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부모들의 대부분의 비판이 사실 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분노와 울분, 심지어 복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이 지속 된다면 자신의 가치는 물론 타인의 가치도 하찮게 여기거나 미운 마음을 갖고 살게 된다. 주변,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받았다고 느낀다면 잘 떨쳐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수집하여 지니고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가 보기에 정 아니더라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인격에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

물론 유익한 비판, 건설적인 비판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인격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어려운 사건 자체에 대해 초치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 성적이 생각보다 너무 안 좋아 실망하고 있다면 왜 성적이 잘 안 나왔지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기보다 어려운 수학 공부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학교에서 장문의 가정통신을 가지고 왔다. 좋은 내용은 하나도 없고 처음도 아니었다. 전에는 그런 가정통신을 가져올 때마다 실망감과 속상함에 야단을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런 가정통신문을 가지고 오려니 심란했겠구나” 아이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전에는 나쁜 내용에 대한 변명으로 회신했다면 이번에는 가정통신은 잘 받았으며 앞으로는 잘 해낼 것이라는 확신의 내용을 쓰고 아이에게 먼저 읽어주고 회신했더니 아이의 태도가 바뀌었다.

다른 사례는 단순한 사건이 커져 버린 경우다. 집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놀자 엄마는 당연히 밖에서 놀라며 나무랐다. 아이는 싫다고 하며 계속 농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스탠드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이가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고 실수였다. 엄마는 그것 보라며 더 크게 화를 냈고 아이는 이전에 있었던 엄마의 비슷한 실수를 들춰내며 맞받았다. 권위에 도전을 받은 엄마는 아이의 몸을 잡고 흔들어 댔다. 십대 아이는 엄마보다 힘이 셌고 그런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려다 보니 엄마를 밀치게 되었다. 엄마는 휘청하다가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고 그럴 의도가 아니었던 아이는 놀라서 밖으로 도망을 했다. 그리고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가서, 스탠드가 산산조각 났을 때 다른 비판이나 비난 없이 공을 집어 바깥으로 던지고 단호하게 거실은 공놀이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 뒤 아이와 함께 치웠다면 어땠을까?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관계 사이에는 늘 완충될 수 있는 공간을 두어야 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객관과 주관 중간 정도에서 상황을 보고 대처할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남이라면 내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다. 남의 아이라면 내 아이에게 하는 비판이나 비난의 반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어떻게 보면 아이의 인격을 건들지 않고 성격을 비판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매일 뉴스에서 날씨를 예보해 준다. 그 예보대로 날씨가 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최첨단 장비의 예측이 무색할 만큼 다르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더하다. 예측하기 어렵다. 맛있는 커피 한잔이나 음악 하나에 행복해지기도 하고 작은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하며 어떤 아픔 때문에 삶을 접어도 되겠다는 극단의 마음까지도 갖는다. 이처럼 사람은 강물과도 같이 좁아지기도 넓어지기도 유속이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맑기도 흐리기도 따뜻하기도 차갑기도 하다. 또 늘 같은 사람이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변화무쌍한 사람, 십대 자녀를 키우는 일은 고귀하고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그들을 향해 인격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성격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벌어진 일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면 자기편을 갖은 든든한 어른으로 자라 또 그렇게 십대 자녀를 돌볼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서적, [부모와 십대 사이],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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