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의 ‘반전’

우리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상대방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선택의 시점에서 나에게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왔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둔감함으로 서운함과 실망을 안겨주는 ‘반전’이 된다.

 

요새 어떤 침대 브랜드의 대표 광고카피인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들을 때마다 나에겐 그것이 부부나 연인 관계의 상담주제로 떠오르곤 한다.
부부상담에서 결혼 동기를 질문하거나, 커플 상담에서 상대방한테 끌린 이유를 질문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을 보여줘서 믿고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연인, 배우자로 선택했다는 대답을 종종 듣는다. 그런데 그 침대 광고카피인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들을 때마다 이들의 상대방을 선택한 이유가 떠오르는 진짜 이유는 그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의 ‘반전’ 때문이다. 실제 상담 장면에서 많은 부부, 커플이 그 ‘반전’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상대방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선택의 시점에서 나에게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왔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둔감함으로 서운함과 실망을 안겨주는 ‘반전’이 된다. 그리고 그 ‘반전’의 주인공은 정서에 둔감하거나 억압되어 있는 남성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정서적 둔감함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 단단한 멋진 사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으로만 인식해버린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의 ‘반전’을 예측하지 못하고, 한 쪽 면만 보게 된 이유는 뭘까?
평소에 지나치게 감정의 영향을 받아서 일을 그르치거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 불안한 감정에 잠식될 때가 많아서 삶이 힘겹게 느껴지는 성향의 사람들 대부분이 감정의 동요가 없는 사람에게 끌린다. 상대의 정서의 둔감함을 나의 정서적 예민함과 대보고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인식해 버리는 것이다.
“아, 진짜 이 사람이 이럴 줄 몰랐어요. 속았어요!”라며 한숨을 길게 내뱉거나 흐느껴 울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변한 것도, 나를 속인 것도 아니다. 나를 송두리째 흔들거나 집어삼킬 듯한 불안정한 정서나 내면의 불안 때문에 보고 싶은 면만 극대화해서 보고는 내가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점은 까마득히 모른채 상대방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또한 그렇게 선택했던 그 마음을 우선 한없이 이해해 주고 싶기도 하다.

우리는 부드러움, 강인함, 쾌활함, 차분함 등의 뒷모습, 인간의 모든 특성에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선택을 하는 시점에서는 나의 내면의 결핍, 상처, 어떤 강한 욕구 등에 의해 내가 보고 싶은 면만 보기 쉽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한다.
그 선택으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도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 그때의 자신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을 질책하기보다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먼저 자상하게 들여다보면 좋겠다. 어떤 큰 실수를 했더라도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우선시 되지 않아야 한다. 판단없이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먼저다. 그럴 수 있다면 참담함을 느끼는 힘든 결과 앞에서도 내면의 힘을 잃지 않고 우리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아름답고 빛나는 ‘반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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