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야기
감정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나빠지기도 할 수 있고, 이것은 내가 나에 대해 한없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계속 감정이 나쁠 수도, 다시 좋아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이다. 남의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이면 어른이다, 생각할텐데 내 아들이라 그런지 아직도 어리게 느껴진다. 그런데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 컸구나,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하루를 늦게 집에 왔다. 시험을 치고 오느라 지치고 피곤해서인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첫 마디가 “너무 배고파”였다. 얼른 상을 차려 주었다. 별 반찬이 없는데도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먹었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하나 했다.
토요일 시험을 위해 금요일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오는 길에 너무 배가 고팠단다. 월말이 다 되어가니 용돈도 간당간당해서 도서관에 가기 전에 든든히 못 먹었다고 했다. 암튼, 기숙사로 가려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스파게티면 하나 먹어야겠다며 기분 좋게 나섰단다. 즉석면을 조리해서 한 젓가락 입에 넣었는데 갑자기, 밤 열두 시가 넘어 라면을 먹고 있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배고픔 하나 못 참는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자신을 덮친 부정적인 감정에 우울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 당황스러웠단다. 어, 뭐지. 이런 기분 나쁜 감정은. 하고는 얼른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고, 종일 열심히 공부했으니 라면 정도는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나니 다시 기분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러고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너무 놀랐지만 두 가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하나는, 감정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나빠지기도 할 수 있고, 이것은 내가 나에 대해 한없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
또 하나는, 그럼에도 내가 어떻게 마음먹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계속 감정이 나쁠 수도, 다시 좋아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다른 친구들도 아무 이유 없이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한다면 빠르게 인식하고 바꾸자. 합리화가 됐든 어떤 방법이라도 괜찮으니까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며 파이팅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 품을 떠나 유치원에 가는 순간부터 자신들만의 ‘사생활’이 생긴다. 그 사생활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으나 그 사생활을 엄마들이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깊게 관리를 해 주는 것도 건강하지는 않은 방법이다. 아이들은 그 사생활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을 배우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간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의 인생을 살게 된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인생을 살아가려면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 청소년기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부모들의 역할은 지원해주고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인생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다. 자신들의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면 얘기했듯, 누구보다 자신을 잘 돌보아야 한다. 자신을 아끼되 이기적이지 않게, 자신을 잘 돌보되 담대하게 말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신을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여기는 자존감을 건강하게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면 좋겠다. 그렇게 양육했다고 해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수 있는게 자존감이지만 건강하게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자양분을 많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인 것 같다. 그 자양분은 자녀에 대한 사랑은 물론이고, 믿고 지켜봐 주는 것과 항상 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