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이금이, 푸른책들

[유진과 유진]

‘유진과 유진’은 두 명의 청소년 이유진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말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두 명의 유진은 유치원을 같이 다녔었는데, 그때 같은 사건을 겪은 후 헤어졌다가 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두 유진이 겪은 사건은 ‘성폭력 피해’였다

 

여름 장마철, 매일 벗어놓는 식구들의 빨래를 말리는게 문제였다. 궁리끝에 동전빨래방을 찾아갔다. 신세계였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빨래를 하고 건조까지 할 수 있다. 게다가 탁탁 털어서 널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다! 차에 빨래를 잔뜩 싣고 오가야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다음번에 이불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빨래방은 쾌적했다. 시원한 에어컨에 달달한 커피가 무료로 제공 된다.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공용의자와 테이블도 있다. 그리고 주인장말로 구색을 갖추어 놓으려 집에 있던 책을 좀 갖다 놓았단다. 거기에 이 책, ‘유진과 유진’이 있었다. 반가워서 뽑아들었다.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이 생각 날듯말듯. 이금이 작가는 동화작가로 꽤 유명한 분이고 내용도 재미있으니 일단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읽으려고 뽑아들고 무료 달달 커피와 함께 의자에 앉았다. 다들 근처에 사는지 오고 갈 뿐, 나처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생긴셈이어서 더 좋았다. 한 시간이 조금 못 되는 시간동안이니 다 못 읽었다. 집에 와서 자꾸 책 생각이 났다. 며칠 후 도서관에 가 봤지만 없었다. 다시 빨래방에 간 날, 더 읽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서 주인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빌렸다. 그게 뭐 어려운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게는 쉬운일도 아니었다.

빌려와서 읽기는 냉큼 읽었지만 독후감을 쓰는게 쉽지 않았다. 쓰고는 싶은데, 뭘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읽을수록, 읽고 난 뒤에도 맘도 무거워지고 어른으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도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해서였던 것 같다.
십 몇 년 전에 읽은 느낌이랑 이제 좀 나이가 든 후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읽은 느낌이 너무 달랐다. 십 여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바뀌었고 세상도 좀 바뀌었다. 그러고보면 그냥 매일을 살지만 세상은 내게 영향을 준다.

이 책, ‘유진과 유진’은 두 명의 청소년 이유진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말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두 명의 유진은 유치원을 같이 다녔었는데, 그때 같은 사건을 겪은 후 헤어졌다가 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두 유진이 겪은 사건은 ‘성폭력 피해’였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달랐다. 한 명의 ‘유진’이가 긍정적인 방법으로 성폭력을 치유했다면, 또 다른 ‘유진’이는 그 사건 자체를 수치스러워하는 ‘어른들’에 의해 강제로 봉합당한 채 해리성 기억장애로 묻어 두었다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상처를 받는다. 그게 참 마음아팠다. 작은 유진의 엄마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엄마도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었고, 허용 받고 인정 받고 싶은 상황이 있었다. “용서해 줘, 유진아. 엄마가 널 끝까지 지켜 주었어야 했는데. 그래, 널 위해서 그 일에서 빠지고,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던 건 거짓말이야. 날 위해서였어. 내 딸한테 그런 일이 일어 났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널 윽박질러서, 네 기억을 빼앗았어.” 그러게… 감추려고, 덮어 두려고만 들지 말고 함께 상처를 치료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쪼여주었으면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텐데…
또 아이들 잘못이 분명히 아닌데도, 상처를 잘 치유했다고 생각한 유진에게도 한 어른은 ‘같이 놀지 말라’고 상처를 준다.

일생을 살며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나의 상처가 컸다고 다른 상처들이 비껴가거나 면제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여러유형의 상처를 겪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상처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고 자신을 지키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들 수 있다. 그 상처들이 잘 아물지 않았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건들어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소설 속에서 희정이가 작은 유진이에게 해 준,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청소년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하늘의 별처럼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들이니까요.’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은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고 인간행동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얘기한다. 작가의 당부처럼, 자신을 사랑한다면 스스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으며 더 나 아질 수 있다. 그러니 상처 받으며 사는 우리모두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더 나은 건강한 나를 위해 힘을 내야 한다. 조금 어렵고 조금 힘들때는 잠시 쉬더라도…….

책 표지 그림과 각 장이 시작되는 그림이 나무이다. 한 나무는 큰 유진이, 다른 한 나무는 작은 유진이다. 큰 유진이 나무는 곧게 자랐고 작은 유진이 나무는 중간에 조금 휘었다. 그럼에도 하늘을 향해 자라며 다행히도 잎이 무성하다. 두 나무 모두,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시원한 그들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나무로 자라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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