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여행의 이유] *김영하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미래학자들은 여행의 수요가 줄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어디든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실제로 유튜브에서는 검색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인류는 여행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수요가 늘고 있다. 영상으로나 간접적으로 본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경제 발전으로 충족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는 곳을 옮겨다니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나는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이사를 다닌적이 없지만 결혼 후에는 여러번 이사를 다녔다. 어떤 곳은 한 달 살고 이사를 한 적도 있었고 몇 년을 외국에서 여행자처럼 살기도 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이사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던 시절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집에 제일 좋았고, 외출을 하더라도 집에 돌아가야만 마음이 편했다. 어릴적 시골 친척집에라도 가면 하루를 못 채우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 혼자 울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홍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친구만 온전히 의지한 여행이었다. 홍콩도심을 그저 걸을 때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내 친구 한 사람뿐이다. 현지인들은 바쁜 걸음으로, 나같은 여행자는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며 따스한 햇살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지날 때였다. 그때 ‘문득’ 정신적 육체적’자유’가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야석에 누워 야구를 보다가 날아가는 공을 보고서 ‘문득’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후에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오래된 여행인데도 그때의 느낌이 또렷하다. 물론 모든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개인적으로 김영하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소설은 재미있고 산문집은 동의가 많이 된다. 연령대도 비슷해서인지 방송에서의 여러 이야기와 모습도 공감된다. 이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 대한 소개책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여행에 관해 작가의 경험에서 생긴 생각들을 적은 산문집니다.

첫 번째 이야기, <추방과 멀미>에서 중국 푸동공항에서 바로 환국조치 되었던 경험이야기다. 모든 것이 준비된 여행이었지만 중국비자를 준비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자신을 자책하며 너무너무 속상하고 화가 날 일인데, 김영하작가는 그런 상황을 즐긴다. 작가에게는 어떤 상황도 ‘직접 경험’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음식에 관해서도 어쩌다 맛있는 것을 고르면 맛있게 먹어서 좋고 엉뚱한 음식을 먹게되면 그것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관해서도 그런 관점으로 살면 참 즐겁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날아자기 위해서다.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65쪽)

희노애락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슬픔은 고통으로 느껴진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인생의 굴곡에 슬픔은 때때로 우리에게 머문다. 그리고 때로는 상처로 남는다. 그래서 슬픔의 장소를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자신이 아는 단어 내에서 생각을 하고 정리가 된다. 거기에 경험은 보다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김영하작가는 생각과 경험의 관계가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한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온전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자책, 미래의 불안에서 떨어져 오직 현재를 사는 삶을 다시한번 인식하게 된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인간과 97%이상 유전자를 공유한 유인원인 고릴라, 오랑우탕, 침팬지 등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데도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단다. 사람이 그렇게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먹기만 한다면 비만과 함께 각종 성인병으로 결국엔 못 살고 말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만이 가진 본능때문이란다. 끝없이 이동해야하는 본능. 그래서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미래학자들은 여행의 수요가 줄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어디든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까. 실제로 유튜브에서는 검색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인류는 여행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수요가 늘고 있다. 영상으로나 간접적으로 본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경제 발전으로 충족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티비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매우 좋아했었다.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보고 또 보기도 했었다. 이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반가왔다. 출연자로서, 시청자로서 작가는 이 여행을 ‘탈여행’이라고 규정한다. 믿을 만한 정보원을 시켜 여행을 대신하게 시킨 후 감상을 듣고 사진 등을 보는 것이다.
금강산을 여행하러 간 양반이, 양반체면에 땀을 뻘뻘흘리며 산을 오를 수 없으니 하인을 시켜 올라 갔다 오게 하고 하인의 눈으로 본 금강산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보같다며 웃었었다. 약간의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방구석 여행자’로 즐거운 여행을 한 셈이고보니 이해가 되는 내 중심적 경험을 했다.

공감되고 감동되었던 부분은 여행지에서의 도움이었다. 의심을 품고도 도움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여행자에게 현지인들은 자신의 집을 내어주기도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시간을 쪼개어 내주기도 한다. 그렇게 받은 도움은 내 무의식을 순화해 주는 것 같다. 나도 길에서 두리번 거리는 외국인을 보면 무턱대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213쪽)

다소 긴 여행인 인생의 ‘지금, 여기’에서 모두 즐겁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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