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자랑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돌보고 가르쳐야 하지만 이제는 너희들이 엄마 아빠를 가르칠 때야.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예전처럼 신경 안 쓰게 되고, 내 행동을 잘 돌아보면 좋겠지만 감도 센스도 떨어져서 잘 안 돼. 그래서 어쩌면 전에 하지 않던 실수나 잘못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럴 때 민감한 너희들이 보고 이야기를 해 줘야 해. 대신, 엄마 아빠는 너희가 어릴 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도 야단치기보다 기다려 주고 알아듣도록 얘기해주고 잘 하도록 도와주었잖아. 이제는 너희가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가 잘 알아듣도록 친절하게 얘기해 주면 좋겠어.”
지난여름,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바닷가에 있는 대도시는 어쩐지 더 멋있게 느껴진다. 마치 작은 상하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특히, 파도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옥외 카페는 인기 만점이었다. 귀로는 파도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고층아파트의 불빛을 야경 삼아 보는 재미가 외국의 어느 곳에 와 있는 듯한 가벼운 설레임도 일게 했다. 앉을 자리 찾기도 힘들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 기다리자 앉을 자리가 났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의자가 부족했다. 우선 있는 의자에 앉고, 옆 테이블 사람들이 일어나려는 모습으로 보여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조금 후에 일어나서 가길래 예의주시하고 있던 나는 얼른 의자 하나를 우리쪽으로 끌어왔다.
‘아, 됐다.’하는 그 순간 아들의 얼굴이 굳었다.
“응, 왜~?”
“엄마!”
“뭐??”
“저분들 의자잖아”
‘엥?’하고 보니 옆에 여리여리한 아가씨 둘이 멋쩍게 서 있었다. 내가 의자를 주시하고 있는 동안 그들도 그 의자를 주시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그저 우리 식구 앉힐 의자만 생각했을 뿐,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쭈뼛쭈뼛 다시 돌려주고 아들한테 처음으로 야단을 들었다. 엄마의 행동이 교양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들은 엄마는 왜 다른 사람은 생각을 안 하느냐, 저 두 사람이 얼마나 황당했겠냐, 등등 여러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좀 억울하고 속상하고 서운했다. 내 잘못이라면 식구들 편하게 앉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야단들을 일인가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엄마보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더 중요한가 싶기도 했다. 거기다 이 나이가 돼서까지 다른 사람 눈치보고 내가 양보하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들한테 당장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두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엄마한테 뭐라 하고 나니 미안했는지 이러저러한 필요치 않은 말들을 했다.
하지만 뒤끝작렬인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얘기해야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였다. 시부모님을 포함,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들 가시고 뒷정리를 도와준 아들이 피곤했는지 침대에 가서 누웠다. 마무리까지 마친 나도 아들 옆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때 그 일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아들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는 그때 이런 이유에서 그랬었다라고 늦은 변명을 했다. 그리고는 “어릴 때는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돌보고 가르쳐야 하지만 이제는 너희들이 엄마 아빠를 가르칠 때야. 나이가 들면서 주변을 예전처럼 신경 안 쓰게 되고, 내 행동을 잘 돌아보면 좋겠지만 감도 센스도 떨어져서 잘 안 돼. 그래서 어쩌면 전에 하지 않던 실수나 잘못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럴 때 민감한 너희들이 보고 이야기를 해 줘야 해. 대신, 엄마 아빠는 너희가 어릴 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도 야단치기보다 기다려 주고 알아듣도록 얘기해주고 잘 하도록 도와주었잖아. 이제는 너희가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엄마 아빠가 잘 알아듣도록 친절하게 얘기해 주면 좋겠어.” 조용히 듣던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네, 그렇네! 알았어, 엄마. 다음부터는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얘기할게” “응응, 고마워”
명절 덕에 용돈을 두둑이 받아 아들의 마음이 풍요로워 그렇게 대답을 순하게 해 줬을지도 모르지만, 아들은 아직까지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 온다. 아들의 다정함은 참 따뜻하고 힘이 된다.
문득, 이게 자식 키우는 맛이지 싶은 뿌듯한 마음이 들어 자랑삼아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