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즐거움

쓰는 즐거움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쓸 때 기분이 좋다. 돈을 쓸 때는 말해 무엇하나 싶을 만큼 기분이 좋고, 운동으로 몸을 쓰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면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힘들게 봉사를 하고서는 오히려 받는 게 더 많다며 행복해한다. 심지어 글을 쓰면서는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기도 한다.

 

가장 큰 즐거움을 돈을 쓸 때일 것이다. 맛있는 것을 사 먹을 때, 사고 싶은 물건을 장만했을 때는 정말이지 기분이 너무 좋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가면 지구의 어느 곳인데도 천국인양 행복하다. 또 다르게는 우울감이 생기면 밖에는 나가기도 싫고 집에서 홈쇼핑으로 불안감을 회피하면서 돈 쓰는 즐거움으로 잊으려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4살 전후로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아기 때는 돈의 효용가치를 모르다가 유치원이나 주변 가족에 의해 알게 되고, 자신이 직접 돈을 써 봄으로써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우선은 가장 편한 방법으로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가 돈을 규모있게 쓰도록 가르치기 시작할 때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 움직임을 최소화했던 사람이다. 운동신경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백하자면 학창시절 체육을 정말 못했다. 여덟 명씩 달리기를 할 때 꼴찌를 안하면 천운이 함께 한 날이고 매달리기는 0초, 피구나 발야구는 의지와 상관없이 민폐를 끼쳐야 해서 정말 싫었었다. 그러다가 37세에 처음 요가와 웨이트를 시작했다. 체력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도저히 쉬는 것으로는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고, 아이들이 한참 손이 많이 갈 때라 쉬는 것도 어려웠다. ‘왜 비싼 돈 내고 무거운 걸 들었다 놨다 하지!’하며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던 내가 살겠다고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생활이 되었다. 없는 운동신경은 타고난 것이라 민첩성은 떨어지지만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참 신기하다. 몸을 그렇게 쓰고 나면 오히려 몸도 맘도 개운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운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거의 그렇다.

상담의 과정에서 걷기나 운동을 처방하기도 한다. 걷기만 해도 뇌파가 안정되고, 뇌파가 안정되면 긍정적 마음이 생기고 어지럽고 산만했던 생각들이 정리된다.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은 한 쌍의 날개이다.

유명인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봉사를 즐겨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중독성이 있다고.
재난의 도시를 자원해서 가는 의사와 간호사, 소방대원들. 그들도 감사한데 묵묵히 어려운 일을 꾸준히 봉사로 하시는 분들이 많다. 뉴스와 정치, 사회에서 상처와 오염을 그분들이 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봉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하고 있다고.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말이지만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하다못해, 고민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을 뿐인데 그 친구가 위로를 받았다며 나 때문에 힘이 난다고 하면 내가 참 좋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자아효능감,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수고를 다른 사람을 위해 쓸 때 행복감을 느낀다.

봉사는 몸을 쓰는 동시에 마음을 함께 쓰게 된다. 그 마음은 백 프로 따뜻한 마음이다. 그 마음의 방향은 분명 밖을 향해 있는데 내가 따뜻해지고 힘이 나는 것을 느낀다. 마치 샘물이 퐁퐁 솟듯 말이다.

치유의 글쓰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일부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며 글쓰기를 배우고 쓰기에 동참한다. 분명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에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마음 등을 쓰면 차분해지고 정리가 되기 때문에 활용하기도 한다. 깊게 경험을 해본 사람도 있고 가볍게 경험해 본 사람도 있겠지만 글쓰기도 분명 나를 위함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가 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설렘이다. 글을 잘 쓰면 좋겠지만 꼭 잘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잘 쓴 것은 나누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나누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좋은 책을 읽고 소감을 써 보아도 좋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그렇지 못한 일이든 일기로 써도 좋다. 느낌, 기분, 연상되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쓰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를 우아하게 다독이는 것이고 위로하는 것이다.

문득, “쓴다”는 단어를 떠올리다 보니 여러 쓰는 즐거움이 떠올랐다. 즐거운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시대에 마음을 쓰고 몸을 쓰고 돈을 쓰고 글을 쓰고, 세상을 위해 머리를 쓰며 더불어 함께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서처럼 하늘로 돌아갈 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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