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꿈쩍않는 정인(情人)을 향한 절규이다.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와인을 한잔 마시거나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며 졸릴 때를 기다리며 책을 읽을 때가 있다.
시는 마치 씨앗과도 같다.
어떤 시는 참 짧은데
이야기는 물론, 감정의 역동이 들어있어서 신기하기도 재미있기도 하다.
어린소녀시절, 윤동주의 시를 좋아했었다. 용돈으로 처음 산 시집도 윤동주의 시집이었다. 지금도 물론 좋아한다.
소년의 윤동주와 청년의 윤동주가 안쓰럽기도하고 그의 청량함과 순수함이 따뜻하게 느껴져서이다.
그런데, 처음 읽는 책도 아닌데 그날따라 유치환의 시에 멈추게 되었다.
유치환의 시는 <깃발>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은유표현의 대표적 싯구, ‘이것은 소리없은 아우성’
이상향과 높은 이념의 좌절이 남성의 목소리로 들린다고 우리는 국어시간에 배워서 외웠었다.
그런데 이런 시가 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그리움 2>

꿈쩍않는 정인(情人)을 향한 절규이다.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이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유치환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보기 드문 신식결혼식을 올렸던 유치환은 여성편력이 간단치 않았는데 운명의 여인을 만난 것이다.
그 운명의 여인에게 1947년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썼는데, 전쟁에 불태워진 것을 빼고도 5,000여 통이란다. 그의 사후, 200통을 추려 단행본을 출간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이벤트’가 너무 중요한 요즘에도 이런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윤리적으로 비난 받을 수도, 그 사랑이 지나치게 미화 됐을 수도 있지만
시인은 시로 말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있는 것 아닐까?
모르면 모르는 채로 내버려두지만, 알게 되었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고
편견의 잣대를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유치환과 그의 절절한 절규의 시가 한밤중 나를 각성시키다.
아,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어쩌란 말이냐!!
그래도 좋다. 잠과 바꾼 댓가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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