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를 해도 미안해하지 않는 남편_드라마 “부부의 세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남편의 강압이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부인의 내면의 상처와 관련이 있는 부인 자신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부부가 건강한 부부관계가 아닌, 모자 관계와 흡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남편 탓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근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부부 관계에서의 배우자의 “외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이기도 하다. 그만큼 부부 관계에서의 외도 사건은 많은 부부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큰 상처가 되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남편이 외도를 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이나 뉘우침이 없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남편의 외도 사실을 속속들이 다 알고 괴로워하는 부인 앞에서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기혼 시청들이 감정이입이 되어 함께 분노했을 것 같다. 남편은 오히려 “사랑한 것이 죄냐고” 하면서 배우자인 부인에게 자신의 외도를 왜 이해하지 못하냐는 식의 반응을 한다.
이 장면은 많은 기혼인 시청자들이 분노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 극 중 이 부부의 부부관계가 어떠한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극 중 부부는 서로를 보살피고 의지하는 동등한 인생의 동반자의 관계가 아니었다.
남편은 마치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서처럼 늘 부인에게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주는 입장이고 자식은 그래도 부모에게 미안하지 않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도 크게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자신의 외도에 큰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부인 앞에서 미안해하지 않는다.
극중 부인(김희애)는 가정의 경제를 감당하는 가장 역할을 하면서, 남편의 사업 자금을 마련해 주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고, 사소한 집안일도 꼼꼼하게 챙기고 해낸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남편의 강압이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부인의 내면의 상처와 관련이 있는 부인 자신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부부가 건강한 부부관계가 아닌, 모자 관계와 흡사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남편 탓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관계의 형성은 두 사람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책임만은 아니다. 특히 부부관계가 더욱 그러하다.
이 부부의 관계 형태에서 남편은 완벽하고 부족함 없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부인이 필요했을 듯하다. 그리고 매우 고맙기도 했지만 그만큼 미안하고 눈치를 보며 지내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편으로서 부인 앞에서 동등한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고, 마음 한 구석에 이와 관련된 충족되지 않는 욕구가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물론 인간의 내면은 너무도 복잡해서 그 외에도 남편 개인의 내면에 성장배경과 관련된 상처 등 다른 원인들이 작용했을 테지만……..
어릴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인이 상간녀 집에 쫓아가서 머리채를 잡는 장면을 자주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외도는 그렇게 상간녀나 배우자를 반드시 처벌하거나, 비슷한 복수를 해줘야 하는 일이라는 개념이 씌워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외도 역시 부부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 중 하나이다. 물론 회복이 어려울 만큼 배우자에게 크고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지만, 부부관계의 문제로 본다면 보다 합리적인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위기이다. 그리고 부부관계에서 발생한 일은 부부 어느 한 쪽만의 책임, 잘못만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많은 부부가 이전에 봐왔던 드라마나 영화의 외도에 대한 전형적인 장면, 개념은 뒤로 하고 함께 고민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위기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