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김 윤나
사람들은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결국 말에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 적절한 때에 입을 열고 정확한 순간에 침묵할 줄 아는 사람, 말 한마디에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몇 년 전,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읽어보라고 했던 책이다. 항상 내가 책을 추천하는 편이어서 기특한 마음에 바로 읽어보았었다. 어찌보면 다 알고 있는듯한 내용인데도 좋았다. 아들이 이런 책을 좋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안도도 좋았고, 무엇보다 글 내용이 겸손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라 더 좋았다.
얼마 전에 친구가 김윤나 작가의 강연이 세바시에 올라왔다기에 찾아보았다. 내가 읽은 책 작가의 육성을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편안히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켰다. 역시 좋았다. 그래서 책을 다시 꺼내 읽고 내 생각과 느낌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가 자신이 자신에 대해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곧 초등학생이 되는 손주의 돌봄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한 시아버지가 ‘애가 초등학교에 가는데 계속 일을 할 거냐’하고 말씀하셨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싶은 말에 욱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되받아치지 않고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여 “아버님, 자식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죠~?”하고 대답했더니 시아버지가 “그렇지, 그렇지!” 하시면서 자신을 너무 좋은 며느리로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두 갈래 길이 있다.부당하고 억울하고 속상한 말에 나도 성질대로 되받아치느냐 그냥 내가 참느냐.
되받아친다면 아마도 분위기는 최소한 ‘싸늘’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꾹꾹 참느라 더 억울하고 속상하고 급기야 상대가 미워질 것이다. 보통의 경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말그릇을 그렇게 넓혀가고 있음을 뿌듯해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넘어서는 것이 자신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 평가, 자아 효능감이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이 양육자에게 충분히 담기고 있다고 느끼면 안정감을 갖는다. 허용과 불허용의 이분법으로 허용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린아이는 여러 면에서 수정해야 할 행동들을 할 것이다. 그야말로 개념이 없어서 자신의 잘잘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보이는 양육자의 태도가 중요하다. 힘들고 지쳐서 야단을 치고 짜증을 내느냐, 아니면 아이가 이해하도록 아이의 언어로 설명할 것이냐다. 다른 면으로는 심술궂게 행동을 했을 때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기에 앞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 이해할 부분은 이해하고 야단을 쳐야 할 부분은 야단을 쳐야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부당과 정당에 예민하다. 자신의 생각에 야단을 듣는 것이 정당하다면 수긍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속으로 쌓아둘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과정에서 양육자의 말그릇이 중요하다. 자신의 말그릇 용량에 따라 아이에게 말을 할 텐데, 그만큼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 바꿔말해, 아이의 말그릇 크기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 속담에는 말에 관한 속담이 참 많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말만 예쁘게 해도 관계 안에서 사랑을 받는다.
저자는 ‘말 그릇’을 나의 말이 태어나고 자라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말 그릇’을 키워 관계와 인생에서 주인이 되라고 조언한다. 자신도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수시로 점검한다고 한다. 말하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면서도 늘 자신을 돌아본다는데, 우리는 학원이라도 다녀야 할 판이다.
사람들은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결국 말에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 적절한 때에 입을 열고 정확한 순간에 침묵할 줄 아는 사람, 말 한마디에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게다가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도 파장을 일으키지만, 내 마음에도 파장을 일으킨다. 표면적으로는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사실은 그 말을 한 당사자에게 가장 깊은 영향력을 남긴다. 지적하는 말하기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마음이 예민해지고, 화가 섞인 말하기를 사용하는 사람 마음에는 화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의 ‘말’을 돌아보는 것은 말하자면, 지금 맺고 있는 관계와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것이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나조차 틈틈이 나의 ‘말 그릇’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누구라도 자신의 ‘말 그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다.
-저자의 말 중에서
좋은 책은 한 번 읽고 덮는 것이 아니다. 두고두고 성경을 펴 보듯, 고전들을 들춰보듯, 역사책으로 현실의 삶을 경계하듯, 곁에 두고 참고 해야 한다. 듣고 말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백번 공감하며 극기복례하고 있는지 과유불급은 아닌지 돌아보는 경각심과 겸손함을 다시 점검해야겠다.
참고문헌, [말 그릇] *김윤나 / 카시오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