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5 *김중원 옮김

제 5 장,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싸움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한 쪽의 아니마가 이성의 아니무스를 자극하여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각각의 부정적인 모습이 발현되어 작은 일이 큰 다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있는 남성적인 모습을 말하며 아니마는 남성에게 있는 여성적인 면을 말합니다.
흔히,여성의 기질 중 부정적인 면으로 잘 토라지고 감상적이며 우울하고 뾰로통하다는 점이 있고
남성의 기질 중 부정적인 면은 둔하고 융통성이 없으며 인과론적 도덕적 판단과 함께 거칠기도하고 공격성을 갖고 있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긍정적 기질도 있지요.
이러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 기질이 남성 안의 여성적 기질인 아니마를 통해, 여성 안의 기질인 아니무스를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한 쪽의 아니마가 이성의 아니무스를 자극하여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각각의 부정적인 모습이 발현되어 작은 일이 큰 다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찮은 목동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 사울왕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를 도와 살린 사람은 사울왕의 딸인 미갈이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팔레스타인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의 약속의 궤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 궤가 돌아오자 온 백성이 기뻐했는데, 누구보다 다윗이 더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체통을 져버린채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미갈은 다윗이 궁정으로 돌아오자 비웃으며 그를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을 살려준 사람이 미갈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당신의 아버지가 아닌 나라면서 앞으로 하나님앞에서 더 경망스럽게 춤 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며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 이야기를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관점으로 풀어본다면 이렇습니다.
사실 미갈은 다윗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여인들한테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 그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안의 아니무스적 기질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다윗또한 미갈의 어머니같은 나무람에 즉각적인 응수로 사울과 그 집안을 싸잡아 비난하며 마치 반항하는 아이처럼 대꾸합니다. 이미 아니마적 감정에 휩쓸려 벌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상처받은 벌로 미갈과 동침하지 않아 미갈이 사랑의 결실인 자식을 낳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싸우면 파괴적이 되고 의사소통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남녀의 많은 만남이 슬프게 끝나곤 합니다. 각자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우위에게 싸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미갈이 자신의 느낌 그대로 “여보, 위대한 승리였어요. 당신의 기쁨도 이해해요. 하지만 모든 여자들 앞에서 그렇게 춤추는 모습은 제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느껴져 싫었어요”라고 표현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발끈하기에 앞서 “여보 무슨 일로 그렇게 기분이 상해 있어요?” ,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내 기분이 좋지 않아요”라고 대화했더라면 적어도 결말이 그렇게 슬프게는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싸우더라도 일차적 한 쌍이 싸워야합니다. 이차적 한 쌍인 서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싸우면 음울하고 화난 감정으로 꽉 차서 다투게 됩니다. 처음에 정확한 느낌을 표현했다면 전체적 음울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의 상호관계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대신 나타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원한다면 자신의 느낌을 말해야 하는 것이 법칙입니다. 여자든 남자든 상처받은 느낌을 표현하지 않으면 각각의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나타나게 되며, 때때로 아니마와 아니무스이 싸움이 시작되는 큰 이유는 계속적으로 마음의 상처가 억압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정적 느낌일지라도 무의식 속에 넣어버리지 말고 서로서로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의식적으로 노트에 써서 표현한다든지 친구나 상담가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속적인 의식으로 연습하고 훈련해서 서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방해없이 창조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서적 [만남, 대화 그리고 치유], 하나의학사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