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담이다] *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김중혁

‘이야기란 놈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모양이에요. 그런 면에서 전파를 닮았죠. 우리가 빌어먹을 인공위성들을 만든 이유가 멉니까? 전파는 무조건 직선으로만 움직이니까요 그걸 지구 반대편에 보내기 위해 반사를 시킨 거잖아요. 제가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인공위성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자, 모두들 인공위성을 하늘로 올려 볼까요?’ (13쪽)
송우영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형 앞으로 남긴 편지를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형의 ‘사라짐’을 알게 되었고 사라진 형과 돌아가신 어머니가 우주 어느곳에선가 만나 이야기 나누기를 소망하게 된다. 말이 안 되지만, 송우영은 아날로그적 인공위성으로 두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기꺼이 하게된다.

 

김중혁 작가는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알게 되었다. 차분한 이미지에 조곤조곤한 말투에, 왠지 착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대화 손님으로 김영하 작가가 나왔고,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라고 소개했다. 살짝, 두 사람의 관계가 부러웠다.

며칠전 도서관에 가서 어슬렁대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알게 된다는 건 눈에 띄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은 반가운 마음과 궁금한 마음에 책을 빼네 자리에 앉았다. 읽기 시작하자…. 금방, 쑥쑥 읽혔다. 책 읽는 속도가 굼벵이인 내가 거의 하루만에 다 읽었다. 물론 너무 긴 소설은 아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쓰지 못할 이야기다. 여하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다.

가장 큰 등장인물로는 우주비행사인 남자와 낮에는 컴퓨터수리공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남자, 두 사람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어머니,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그런 역할을 해주는 낙하산을 수리하는 여자와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여자가 나온다.

우주 비행사의 독백과도 같은 부분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이다. 우주 공간에서 남기는 메시지. 죽음을 앞둔. 아니, 사라짐을 앞둔. 내용이 얼마 되지는 않는다.

우주비행사 이일영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송우영. 등장인물로 보면 접점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고, 동생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살아생전 형의 모습을 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마지막엔 형제로,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로 마무리가 된다.

사고였다. 꼬리에 불이 붙었다. 기내의 산소가 유출되고 있다. 선실의 압력을 낮추어 보았지만… 수동으로 분리했고… 행운을 빌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후로 우주선은 우주의 어느 곳에 있고 기내의 산소가 줄어드는 동안 우주비행사는 독백으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남긴다. 절박한 상황인데, 우주비행사 자신도, 그를 떠나보낸 사람들도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도 취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송우영.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서있을때 가장 웃기다. 그래서 앉아서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서는 상상을 한다. 상상만으로도 이야기가 잘 된다. 상상은 가끔 상상만으로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야기란 놈은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모양이에요. 그런 면에서 전파를 닮았죠. 우리가 빌어먹을 인공위성들을 만든 이유가 멉니까? 전파는 무조건 직선으로만 움직이니까요 그걸 지구 반대편에 보내기 위해 반사를 시킨 거잖아요. 제가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인공위성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자, 모두들 인공위성을 하늘로 올려 볼까요?’ (13쪽)
송우영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형 앞으로 남긴 편지를 전달한다. 그 과정에서 형의 ‘사라짐’을 알게 되었고 사라진 형과 돌아가신 어머니가 우주 어느곳에선가 만나 이야기 나누기를 소망하게 된다. 말이 안 되지만, 송우영은 아날로그적 인공위성으로 두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기꺼이 하게된다.

책 내용중에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은 1950년대에 로켓을 발사하고는 관측 기기로 우주 사진을 찍었어. 사진은 곧바로 밀봉돼서 대기권을 뚫고 지상으로 떨어진 거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필름들 중 하나가 할아버지 옥수수밭으로 불시착했고. (중략) 돈? 아니, 할아버지는 돈 대신 다른 걸 원했어. 배포가 큰 사람이었지. (중략) 할아버지는 일자리를 원했어 (중략) 할아버지는 돈 대신에 미래를 선택했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 미래는 돈이 될 수 있지만, 돈은 절대 미래를 보장해 주시 않거든. (78쪽 이쪽저쪽)
이 부분도 참 좋았다. 나라면 어마어마한 보상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어떤 상황들 속에서 나의 선택기준에 대해 돌아보았고 건강한 기준을 들을 느낌이라 좋았다.

이일영은 평생의 꿈이 우주비행사였고, 그렇게 되기위해 노력에 노력을 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 배신하지 않기 위해 우주선을 탔다. 그리고 우주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며 사라진 것이다. 동생인 송우영은 인생이 뭐 그렇게 의미있냐는 자세다.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가출이 취미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예쁜 여자 얘기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철학적 고민을 한다고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 남자친구랑 같이 있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반항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간절하게 산다고, 그게 의미가 있어요? 열 받지마,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어.'(139쪽 부터 144쪽)
참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심드렁한 부분을 읽고, 송우영은 어쩌면 ‘의미의 무거움’을 ‘농담’으로 덜어내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주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디가 끝인지, 시작과 끝이 있기는 한지. 우주의 가운데가 어디쯤일지, 우주에서 정말 사라진다면 육체는 어떻게 될지. 영혼은 과연 어떻게 흩어질지….. 우주공간에도 질서가 있다고 하는데, 질서없이 반항적인 별들은 어떤지. (물론, 관련책들을 찾아보면 좀 알 수는 있겠으나 그냥 이렇게 우주처럼 생각만 하고 싶다.)
책 제목이 ‘나는 농담이다’라서 그렇지, 내용은 무겁기로 치면 죽음과 사라짐이니까 슬픔이고 상당히 무겁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동생이 농담처럼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진지하게 들으면 더없이 진지한 이야기이다. 이게 다 우주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가벼운 농담으로만 받아들일 수도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으니 두려움의 무게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독후감마저 이렇게 어수선하게 쓰고 있는 것이 그때문인줄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도 참 어이없으면서도 슬펐었다. 주인공엔 루드빅이, 대학시절 여자친구의 관심을 끌려고 사회를 비판하는 농담 한마디를 적어 보냈다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한 사람의 고귀한 인생이 망가뜨려진 것이다. 그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슬프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책 제목이라 생각이 났을테지만, <농담>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어자체는 참 가벼운 느낌인데, 그 가벼움이 무거움을 상쇄하려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마치 첨예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풀려고 풀어놓는 착한말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라는 공간과 농담이라는 말을 이은 작가의 상상력이 ‘역시 작가구나!’싶었다. 재미있게 읽은, 그러면서도 생각을 하게하고 여운을 남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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