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삼국지] 1, 2

[설민석의 삼국지] 1, 2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고,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자꾸만 겹쳐보게 됐었다.
우리나라의 짧은 민주주의 세상은 항상 저울이 이리로 저리로 기운다.

 

한 20년 전쯤, [원본 삼국지] 5권을 읽어보겠노라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 있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했던가? 암튼 난 사귀어도 좋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겨우 2권 정도까지 읽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숙제로 계속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재미는 있는데 좀 복잡하고, 인물들이 많으니 자꾸만 앞의 인물과 사건을 까먹게 되었었다.

설민석 선생은 한국사 강의자로 유명세를 탔고 최근에는 티비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해 익숙하다. 쉽게 풀이해서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좋게 설명하는 것이 그분의 장점인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삼국지] 역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원본과 다른 각색 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나 인과관계, 과감히 생략한 인물圖 등이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삼국지는 황건적의 난에서 시작된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시대가 가고 400여 년간 찬란했던 漢나라가 왕권 말기인 영제시절부터 퇴락의 길을 걷게 된다. 지도자의 힘은 약해지고 기득권은 사치와 향락에 빠진 데다가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환관이 국정을 농단하게 된다. 심지어 황제가 환관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환관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을까. 그는 ‘관직 장사’는 물론 백성들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수탈하고 또 수탈한다. 그러니 백성들이 너무나 살기 힘들었다. 그 때, 선비 출신의 장각이 과거에 낙방하여 약초나 캐며 살려고 산에 들어 갔다가 산신령에게 책 하나를 받아 수련하던 중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자 “환관들의 꼭두각시가 된 황제에 맞서 반드시 신세계를 열어보리”라며 난을 일으킨 것이 황건적의 난이다. 그런데 그들 또한 자신들이 권력을 갖게 되자 안주하여 그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하니,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무한한 것 같다.

[삼국지]하면 영웅적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중 유비, 관우, 재갈공명, 조조, 재갈공명과 동문수학했던 사마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유비는 도의와 명분, 애민정신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덕장중의 덕장이라고 표현한다. 여러 일화 중,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목숨 걸고 지켜 데려오자 아이를 내던지고는 네가 죽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속상해 했단다. 따르는 자의 입장에서는 목숨도 아깝지 않을 주군인 셈이다.
전쟁 중, 유비를 따르는 3천여 명의 군사와 10여 만의 백성들이 있었다. 백성들 사이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있었으니 행군이 어려웠다. 하루에 50리를 가야 하는데 고작 20리, 10리 밖에 가지 못했다. 거기다 군사들을 먹일 식량도 부족했다. 재갈공명을 비롯한 책사들은 이러다 다 같이 죽는다며, 漢나라의 부흥을 이루기 위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따라오지 못하는 백성은 버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유비는 민심을 잃고서 천하를 얻을 수 없으며, 백성은 자신을 버리고 떠날 수 있어도 자신은 백성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더라도 군사들이 혹여 흥분하여 백성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했고 군량미를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러니 유비의 천하에 있어 본 백성들은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유비의 도원결의 형제인 관우는 의리의 인물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모든 제후들이 탐낼 만큼 백전백승의 장수인데 충직하기까지 하다. 한번은 전쟁 중에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헤어지게 되었다. 관우는 조조군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조조는 관우를 탐내고 있었기에 죽이기보다 회유하기에 바빴다. 파격적으로 전쟁포로인 관우가 바라는 세 가지를 모두 들어주었다. 그러면서도 여러모로 떠보기도 했다. 조조가 떠보는 것마다 관우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하루에 천릿길을 간다는 적토마까지 선물할밖에. 그러나 의리의 인물인 관우는 유비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는 조조를 떠나 돌아간다. 그리고 훗날, 조조를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에게 받았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살려 보내 준다.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관우를 신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도 관우를 섬기는 사당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동묘이다.

조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장이자 지략가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두통에 시달리다 결국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된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정도로 두통이 심했다면 이명도 그 못지않게 심했을 것이다. 추측건대, 두통과 이명의 고통이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렸을 것이다.
그의 두통에는 이유가 있었다. 인재를 알아보고 쓸 줄 알면서도 믿지를 못했다. 언제든 자신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어찌보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믿을만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외롭고도 고독하다. 또 그는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도 아끼지 않는 냉철한 승부사이다. 그렇게 남들보다 상황을 앞서 보고 판단하며 대륙을 자신의 천하로 넓혀가면서도 행복했다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조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무덤을 평범하게 만들되 똑같은 무덤을 71개 더 만들어 자신의 무덤이 무엇인지 모르게 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귀중한 물건을 절대로 넣지 말라는 말과 함께. 원한 산 일이 많아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질 것을 예견한 것이다. 또 그렇게 넓힌 자신의 왕국을 사후, 믿지 못해 변방을 떠돌게 했던 책사 사마의의 후손이 차지하게 된다. 그는 무엇을 위해 평생을 두통에 시달리며 영토를 넓혔을까,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제일 매력적인 인물은 재갈공명이다. 잘 알다시피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책사로 일을 하게 된다. 유비가 그를 선생으로 모시며 존중했기에, 그또한 자신을 그렇게 온전히 믿고 맡겨주는 유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낸다. 읽은 이의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재갈공명은 흥분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 동주의 주유장군은 재갈공명과 함께하고 싶지가 않아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작정한다. 조조의 10만 대군과 싸우기 위해서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재갈공명은 열흘이 웬말이냐며 사흘 안에 만들어 오겠다고 한다. 그러고는 안개가 자욱이 낀 날 짚을 잔뜩 싣고 조조의 진영으로 간다. 놀란 조조군은 공격을 받기 전에 활을 쏘아 먼저 공격을 한다. 그렇게 걷어 온 화살이 12만 개였다고 한다. 그 외에는 재갈공명은 사람의 심리, 날씨와 지형, 외교와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여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또한 유비 사후, 그의 유지를 받들어 불가능을 알면서도 한나라의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람의 됨됨이도 지혜도 지식도 뛰어나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사마의는 재갈공명과 동문수학한 사이이다. 그도 처음에는 관직에 나가는 것을 고사했으나 조조의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조조의 책사가 되었다. 하지만 조조의 믿음을 얻지는 못하였다. 잘해보겠다고 한 행동들이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참았다. 사마의는 중국의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과 같은 혈통이라는 설도 있다. 그만큼 그는 인내심이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자기통제의 승부사 사마의]라는 책도 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새를 울게 해야 한다면 유비는 새를 설득해서 울리고, 조조를 새가 울도록 만들며, 사마의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사마의는 조조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손자의 손자까지 거치면서 죽기 전까지 최고 실권자로 살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자 사마염이 오나라까지 통합하여 서진이라는 나라로 통일시키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따지고 보면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고,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자꾸만 겹쳐보게 됐었다.
우리나라의 짧은 민주주의 세상은 항상 저울이 이리로 저리로 기운다. 혼란한 사회 속의 위정자들을 보면서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희망을 내려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의 나침반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남철은 망가진 것이라고 했으니,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나 흔들리는 것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고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본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한 책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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